ۼ : 24-03-15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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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U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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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사설바둑이 병원생활은 오늘로 78일차에 접어들었다.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남은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건 세 달 가까이 흐른 시간 때문이 아니다. 회복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디더라도 조금씩 나아진다고 느낄 수 있다면 더 긴 시간도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다.​​지금은 퇴원이 번복되던 지난 달, 집으로 모셔오는 것을 두려워하던 때가 되레 그립다. 힘들면 하루 종일 사람을 쓰면 되었던 것을, 외래진료 때도 사설 앰블런스 이용하면 되었을 텐데 뭔 걱정 그리했나 싶으면서 그때 가졌던 무거웠던 내 마음이 밉다. 거동 어려워 화장실 문제 해결이 큰 짐이었고 입맛이 너무 없어 식사를 거의 못하시던 그때를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장 폐색과 흡인성폐렴으로 다시 중환자실에 사설바둑이 가게 된 아빠는 추가로 인공호흡기를 달게 되었고 기관절개 후에 콧줄까지 끼게 되었다. 운동치료사가 와서 아빠 다리 운동을 시키고 보조기를 밀면서 걷기는 했던 아빠의 모습조차 이제는 꿈 같은 상황. 중환자실 면회는 완전히 금지가 되었다가 얼마전부터 오전 10시, 단 한 명의 보호자만 30분간 가능하게 되었다. 그 시간이 아니면 아빠를 볼 수 없으니 나로서는 주말 밖에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지난 주 토요일엔 면회시간을 맞추려 일찍 친정에 도착했는데 언니가 미안해하며 일요일에 아빠를 만나면 안되겠느냐 물었다. 금요일에 아빠와 필담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뭔가 마무리되지 못한 부분이 있어 마음이 찜찜하다 했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데 말 조차 못하고 있는 아빠가 느낄 불안감이 오죽할까 싶어 사설바둑이 그러라 하고 나는 중환자실 밖에서 기다렸다.​​너무 답답하니 무의식 중에 인공호흡기를 떼어버려 양 손을 묶어두기까지 했었다는데 조금 진정된 후엔 종이에 글자를 쓰실 수는 있다고했다. 나는 그 과정을 직접 보지는 못했으니 그저 예상해 볼 뿐. 필담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30분 뒤 눈물 범벅이 된 언니가 가져나온 종이에는 '안경'과 '일본어'가 적혀 있었다.​​반가우면서도 가슴 미어졌던 아빠의 글씨​무료한 시간을 보내고있는 아빠는 일반병실 계실 때도 TV조차 켜지 않았었는데 안경과 늘 보시던 일본어 단어장을 가져다달라니 반가웠다. 그래서 얼른 가져다드리고 싶어 친정으로 와서 아빠 물건을 챙기고 이번엔 버스 아니라 내 차를 타고 언니와 병원으로 다시 가서 전해드리고 돌아왔었다.​​언니는 온갖 기계 달고 사설바둑이 기관절개까지 한 아빠 모습을 보면 감정조절이 어려울 거라며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빠를 만나라고 신신당부했다.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해서인지 나는 아빠를 의연하게 만날 수 있었고 듣던 것보단 아빠가 나아진 것 같아 오히려 안심이 되기도 했었다.​​지난 일요일에 아빠와는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맨 처음 아빠가 궁금해했던 것은 엄마의 안부였다. 금.토요일엔 언니가, 일요일엔 내가 면회했으니 엄마를 사흘간 못봤고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오고 기관절개까지 하게 되었으니 엄마가 많이 상심했을까 염려되셨던 모양이었다.​​엄마 잘있냐 묻고는 그 와중에 편의점 오픈했냐 묻던 아빠 내내 돌봐주고있는 간호사들 간식 사다주라시며​​엄마 괜찮다 안심시키고 앞으로도 우리가 잘 챙길 거라고도 하고 어떤 자책도 하지말고 아빠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 사설바둑이 지 잊지말라고 말했다. 아빠의 글씨는 전날보다 또렷해졌고 내 손을 잡는 힘도 아주 강했다. 아빠는 바둑이 두고싶으니 패드 하나를 세팅해 가져다달라고도 적어주셨다. 할머니 기일이라 토요일 오후 산소에도 다녀왔다하니 성호를 그으셨다. 모처럼 엄마 모시고 바람쐬고 맛난 것도 먹고 돌아왔다하니 아빠는 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여주시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돌아나왔던 것 같다.​​그리고 지난 화요일 준중환자실인 집중관찰실로 이동한다하여 엄마는 또 하염없이 병실 앞에서 대기하고 나는 네 번째 간병인을 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언니는 회사에 있다 짬내어 점심시간에 병원으로 갔고 간병인이 구해지지 않아 엄마가 첫 밤을 아빠 곁에서 주무셨다. 수요일에 간병인이 구해졌고 조금 안정궤도에 접어드는가 사설바둑이 했더니 목요일에 부정맥으로 다시 또 중환자실로 이동한다는 소식...​​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이런 것일 지. 목요일 하루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었고 울먹이는 엄마 목소리에 위로하고 설명하면서도 막막하기만 했다. 그렇게 금요일까지 이틀 가슴을 졸이며 시간을 보내다 어제 오전에 다시 친정으로 와서 지난 주처럼 언니가 아빠 만나는 동안 중환자실 앞에서 기다렸다. 언니는 역시나 눈이 빨개져 나왔고 아빠가 너무 기력이 없다고 걱정했다. 부정맥 해결되면 다시 병실이동이 있을거라해서 자꾸 비슷한 상황 번복되니 불안하다고, 전반적으로 모든 상황이 양호해질 때까지 중환자실에 계시는 게 나을 거 같다고 주치의에게 말했다고 했다.​​그리고 오늘, 일주일만에 아빠를 만났다. 오늘 만난 아빠는 이제껏 내가 병원에서 봐왔던 얼굴 가운데 가장 사설바둑이 나빴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가슴이 미어져 눈물이 흘렀다. 얼굴은 앙상하고 손 발은 부어있고 온 몸에 주렁주렁 달린 기계들과 가슴에 엄청난 수술자국, 인공호흡기, 콧줄, 기도에 꽂힌 호스, 소변줄.. 눈빛은 지난 주보다 더 흐릿했고 내 손을 붙잡는 힘도 지난 번 같지 않았다. 종이에 글씨 쓸 힘도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빠, 너무 힘들지?'하며 머리카락을 쓸었더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가 내 가슴을 이렇게 아리게 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슴깊은 곳을 불에 데인 듯 찢어지게 아프고 쓰렸다. ​​더 가까이 다가가 눈을 맞추고 손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아빠 이겨내야 한다고. 내가 아빠가 그래 줄거라 믿을 거라고.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고 사설바둑이 나와 헤어질 때 손을 들어 흔들어주셨다. 그렇게 발 걸음이 떨어지지 않은 적은 내 생애 처음이었다. 친정으로 일단 돌아와 가방을 싸고 집으로 갈 준비를 하는데 도저히 진정되지가 않았고 그러니 입맛은 달아나버려 무엇도 먹히지가 않았다.​​엄마 걱정하실까 억지로 몇 수저 뜨고는 엄마와도 헤어져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주치의는 내게도 내일즈음 아빠가 준중환자실인 집중관찰실로 이동할거라 했는데 그럼에도 뭔가 안심이 되지 않는다. 부디 다시는 중환자실로 돌아가는 일이 없기를 정말 간절히간절히 바란다. 아마도 나는 내일 다섯 번째 간병인을 구하게 될 거다. 부디 인간적인 분이기를.​​연거푸 사흘을 제대로 못 자 나는 지금 피곤에 찌든 상태. 오늘 밤엔 푹 자고 기운내야지.​​​아빠. 난 아빠를 믿어..힘내요!​​​#아빠입원78일차#관상동맥우회술#흡인성폐렴#장폐색#인공호흡기#기관절개#중환자실은이제영원히안녕하고싶다#아빠를믿어요​​​​​​​